이번 주도 일주일 동안 쓰기를 미루다 지난주와 거의 비슷한 시간에 이렇게 한 줄을 쓴다. 거의 매일 투두메이트에 <쓰기>를 넣어놨지만 희한하게도 빈 화면에 글자를 적으려면 머릿속에 떠다니던 문장이 한 줄도 생각나지 않았다. 주로 세수할 때, 머리 감을 때, 샤워할 때, 설거지할 때 — 그러고보니 모두 물을 쓰고 있을 때인데, 이게 물리적으로 쓸 ...
글을 너무 쓰기 싫어서 미루고 미루다 한 줄 쓴다. 왜 쓰기 싫냐 물으면, 얼마 전 같았으면 귀찮아서라고 답했을 것이다. 귀찮아. 입 모양과 잇새로 나가는 바람 소리가 입에 붙은 듯한 그것이 어느 날 머리를 말리다가 문득 거짓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을은 지났고 겨울의 초입이었던 것 같다. 귀찮다는 말을 필요 이상으로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는데 — 물론 하...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고등학교 급식실 꿈을 꾼다. 친한 무리에서 두셋 씩 짝을 지어 급식실에 가는데 나만 교실에 남은 꿈이다. 누구랑 누구는 종 치자마자 뛰어가기로 해서, 누구랑 누구는 음악실에서 바로 가느라, 그런 이유로 친구들이 나를 까맣게 잊은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던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럴까 봐 걱정했던 것 같기도 하다. 기숙...
친구 사이엔 우정 말고도 수많은 감정이 흐른다. 애틋함, 동경 같은 비교적 말랑말랑한 것과 질투, 열등감, 증오까지 공존한다. 꼴도 보기 싫지만 없어선 안 되는, 사랑하는 한편 죽여버리고 싶은 친구가 있다. 그런 건 '진짜 친구'가 아니지 않냐고? 그 우정이 진짜인지, 그들이 친구가 맞는지는 주변 사람이 판단할 일이 아니다. 너무 복잡하게 얽힌 감정은 타인...
일요일 밤 온라인 모임에서 전주국제영화제 얘기가 나왔다. 이번에 현장을 다녀오신 분이 작품을 고르며 '실패'를 피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하셨다. 그 마음 알죠 알죠. 속으로 열심히 끄덕이는데 내게 마이크가 왔다. 덕복 님의 영화제 경험은 어땠어요? 침착하자... 여기서 버튼이 눌리는 순간 이 모임의 빌런이 된다. 최대한 간결한 대답을 골랐다. 그냥 예술적인 ...
사람이 비상식적인 행동을 할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잖아요. 열아홉 살 때 담임이었던 서 선생을 무려 10년째 짝사랑해 온 양미숙 양에게도 이유가 있다.당시 양미숙은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지독하게 외로웠던 순간, 서 선생이 이름을 부르며 미숙을 찾았다. 길든 짧든 따돌림을 당해본 사람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그때 누군가 내민 손이 어느 정도 의미인지, ...
비밀은 없다. 세상일이 반드시 올바르게 돌아가느라 그렇다기보단 인간의 시야가 좁은 탓이다. 아는 것만 보인다. 관객은 익숙한 요소에 정신이 팔린다. 선거, 권력 다툼, 모성애, 반전... 5년 전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나의 시야는 연홍 역을 맡은 손예진 배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전에 없던 목소리를 쓰며 눈을 번뜩이는 손예진만으로 이미 영화가 가득 차 버...
통찰력을 의식하기 시작한 건 이십 대 중반 무렵이었다. 얘가 ‘인사이트’가 좋아. 영어를 섞어 쓰길 좋아하는 이과장이 나를 두고 그런 말을 종종 했기 때문이었다. 문맥상 말귀를 금방 알아듣는다는, 사람들 간 관계와 서열을 빨리 파악했다는 (이과장은 그것을 매우 중요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뜻이었다. 연차보다 버거운 일을 맡은 계약직에겐 꽤 유용한 무기였다....
점심을 먹고 무화과와 커피까지 챙겨 먹은 금요일 오후 두 시. 새로 산 책 중에 두께가 가장 얇은 것을 골라 가방에 넣는다. 사실 가장 무거운 이야기가 담긴 그 책을 가지고 뚤레뚤레 신사근린공원으로 간다. 신사근린공원은 개나리공원, 까치공원보다 넓고 쾌적하게 관리되어 어떤 면에선 도산공원보다도 낫다. 아침에 부지런히 배드민턴 치는 사람들 곁에서 부지런히 청...
비밀인데, 내 오른쪽 눈과 관자놀이 사이에는 나이키 모양 흉터가 있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흉터는 서럽게 울 때 드러난다. 울음에 시동이 걸릴 때 눈시울이 붉어지거나 코 끝이 발개지지 않나. 울음이 부아앙 속력을 내면 빨갛게 나이키 모양이 나타난다. 양 팔꿈치와 무릎에 하얗게 남은 흉터와 달리 어떻게 모습을 감추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 광주 할머니...
안녕하세요! 안녕히 지내고 계신지요? 어제는 비가 쏟아지더니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았어요. 저는 좋아하는 동네에 가서 공기를 듬뿍 마시고, 햇볕을 듬뿍 쬐고 왔답니다. 갈팡질팡하던 날들이 지나고 이제 정말 초여름이 올 것 같아요. 늦봄에 처음 보낸 [취향의 오작동]을 다음 계절에도 무사히 만들어 보냅니다. [취향의 오작동] 초여름호에는 추적추적 비가 오는 ...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여성들에게 김혜수 배우는 참 애틋한 존재이지요. 극적인 목소리와 곧게 선 자세, 후배 여성 배우들을 보는 눈빛 같은 걸 떠올리면 조금 울 것 같은 기분이 되거든요. 아이고... 언니...그런 김혜수 배우가 주인공 현수 역을 맡은 영화 <내가 죽던 날>은 지금까지 해온 작품들과 결이 다르면서도 가장 김혜수적인 작품입니다. 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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